낸 골딘(Nan Goldin) 은 단순한 사진작가를 넘어, 동시대 예술과 사회운동을 연결한 상징적 인물로 평가받습니다. 그는 1970년대부터 보스턴과 뉴욕 언더그라운드 문화 속에서 LGBTQ+ 공동체, 드래그 퀸, 섹슈얼리티, 마약, 가정폭력 같은 사회의 주변부를 카메라로 기록했습니다. 그의 사진은 아름답고 화려하기보다, 날것의 삶과 고통, 사랑을 있는 그대로 보여줍니다. 이후 그는 개인적 고통을 넘어, 사회적 고발의 목소리까지 예술로 확장하며 시대정신을 담아냈습니다. 특히 2010년대 이후 오피오이드 위기에 맞서 거대 제약 기업을 상대로 싸운 행동은, 그를 단순한 예술가에서 사회운동가로 자리매김하게 했습니다.
이 사진은 낸 골딘이 3년간 연인으로 지냈던 브라이언과의 관계가 끝날 무렵 촬영된 셀프 포트레이트입니다. 브라이언은 그녀의 작품에 가장 많이 등장한 주인공이자, 동시에 그녀에게 심각한 폭력을 가한 인물이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낸을 심하게 구타했고, 그 결과 그녀는 왼쪽 눈의 시력을 잃을 뻔하는 위기를 겪습니다.
초기 생애와 예술적 배경
낸 골딘은 1953년 미국 워싱턴 D.C.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가족 내 갈등과 언니의 자살 등 깊은 상처를 경험했습니다. 이 상실은 그의 예술 세계에 큰 흔적을 남겼고, 이후 카메라를 통해 주변의 고통과 상처를 기록하는 방식으로 삶과 화해하려 했습니다. 그는 1970년대 보스턴에서 사진을 배우며 예술적 정체성을 형성했는데, 이 시기부터 그는 ‘아웃사이더’로 불리던 사람들의 세계에 깊이 들어갔습니다. 당시 주류 사회가 외면했던 드래그 퀸, 성소수자, 마약 중독자 등과 가까이 지내며 그들의 일상을 사진으로 남겼습니다.
대표작: 「Ballad of Sexual Dependency」
낸 골딘의 가장 유명한 작품은 사진 슬라이드 쇼 「Ballad of Sexual Dependency」(성적 의존의 발라드) 입니다. 이 작업은 700여 장의 사진을 음악과 함께 구성해 상영하는 형식으로, 친구와 연인, 공동체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담아냈습니다.
사진 속 인물들은 웃고, 사랑하고, 섹스를 하고, 싸우고, 마약을 하고, 병에 걸리고, 죽음을 맞이합니다. 낸 골딘은 이를 미화하지도, 비판하지도 않고, 있는 그대로의 삶을 기록했습니다. 이 작업은 1980년대 예술계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고, 뉴욕 MoMA와 휘트니 미술관 등에서 전시되며 동시대 사진의 새로운 장을 열었습니다.
카메라 뒤의 자기 고백
낸 골딘의 사진이 특별한 이유는, 그가 단순히 타인을 찍는 관찰자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는 언제나 자신이 속한 공동체 안에서, 함께 웃고 울고 사랑하며, 그 과정에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특히 그는 가정폭력과 중독, 섹슈얼리티 같은 개인적 고통을 숨기지 않고 드러냈습니다. 실제로 그는 한 연인에게 심각한 폭력을 당한 후, 얼굴에 멍든 자신의 모습을 직접 촬영하여 전시했습니다. 이 작업은 여성에 대한 폭력 문제를 사회적으로 환기시키는 계기가 되었고, 사진이 단순한 미적 대상이 아니라 사회적 고발의 수단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예술가에서 행동가로 – 오피오이드 위기와 싸움
2010년대 낸 골딘은 심각한 오피오이드 중독을 겪었습니다. 당시 옥시콘틴(OxyContin)이라는 진통제를 생산한 퍼듀 파마(Purdue Pharma)와 그 소유주인 새클러(Sackler) 가문은, 미국 사회에 오피오이드 중독을 확산시킨 주범으로 지목되고 있었습니다. 낸 골딘은 약물 중독에서 회복한 뒤, PAIN(Prescription Addiction Intervention Now) 이라는 단체를 조직해 새클러 가문의 후원을 받던 미술관과 기관을 압박하는 캠페인을 벌였습니다.
그는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구겐하임 미술관, 런던 내셔널 갤러리 등에서 퍼포먼스 시위를 벌이며, 예술계가 제약 기업의 돈을 받아들임으로써 사회적 범죄에 공범이 되고 있음을 고발했습니다. 결국 여러 미술관들이 새클러 가문의 후원을 중단했으며, 낸 골딘의 목소리는 예술계를 넘어 사회 전체에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다큐멘터리 「All the Beauty and the Bloodshed」
2022년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로라 포이트라스 감독의 다큐멘터리 <All the Beauty and the Bloodshed> 는 낸 골딘의 삶과 예술, 그리고 사회운동을 기록했습니다. 영화는 그의 사진 작업과 함께, 오피오이드 위기에 맞서 싸운 과정을 병치하여 보여줍니다. 제목 그대로, 그의 삶은 아름다움과 피로 얼룩진 고통이 공존하는 이야기였음을 드러냅니다. 이 작품은 단순한 전기 영화가 아니라, 예술과 정치가 어떻게 결합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강력한 증언이 되었습니다.
예술과 사회적 책임의 교차점
낸 골딘은 예술가가 반드시 정치적이어야 한다고 주장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삶과 작업은 자연스럽게 사회와 맞닿아 있었습니다. 그는 언더그라운드 공동체의 현실을 기록하며 사회의 편견에 도전했고, 자신의 상처를 드러냄으로써 여성과 소수자의 목소리를 대변했습니다. 나아가 제약 기업의 범죄를 폭로하며 예술계와 권력의 관계를 문제 삼았습니다.
그의 삶은 예술과 사회적 책임이 어떻게 교차할 수 있는지를 극적으로 보여줍니다. 낸 골딘에게 사진은 단순한 이미지가 아니라, 존재와 저항의 기록이었습니다.
낸 골딘은 동시대 사진예술의 경계를 확장했을 뿐만 아니라, 사회운동을 통해 예술이 현실을 변화시킬 수 있음을 증명한 인물입니다. 그는 아웃사이더 공동체의 삶을 기록하며 “보이지 않는 이들을 보이게 했고”, 오피오이드 위기와 싸우며 “권력의 범죄를 예술의 언어로 폭로”했습니다.
그의 이야기는 예술이 단순히 아름다움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고통을 드러내고 사회적 정의를 요구하는 힘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낸 골딘의 삶을 들여다보는 것은 곧 우리가 예술을 왜 필요로 하는가, 그리고 예술이 어떤 책임을 질 수 있는가를 되묻는 경험입니다.